그는 누구와도 같으나 누구와도 다른 남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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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그의 용모는 잘나지 않았으나
그렇다고 못난 것은 아니다.
그는 체구가 크지는 않지만
작은 편은 아니다.
그는 암팡져 보이지 않으며
헐렁해 뵈지도 않는다.
그는 호락호락한 인상을 주진 않지만,
압도적인 인상도 아니다.
미소를 잃지 않으나
웃음이 헤픈 것은 결코 아니다.
그는 탐욕스러워 보이지 않으나
세상 밖을 어슬렁거리는 해탈자도 아니며,
구도자가 아니라 하여 기름땀에 찌든 것은 아니다.
그는 약자에게 강하지 않고 강자앞에선 약하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으면서 자존심을 지킴에 허술하지도 않다.
그는 단번에 깊이 사귀고 싶은 매력을 갖진 않았으나,
한두 번만 만난다면 갈증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여성을 볼 때 여자로만 보지는 않으며,
사랑을 위하여 목숨을 거는 도박꾼은 아니지만,
심심풀이 장난으로 생각지도 않는다.
그는 사람 사귐에 능숙하진 않으나
거북스러울 정도로 서툴지도 않는다.
그의 눈빛이 꿈꾸는 듯하다 하여
멍청해 보이지는 않으며,
그의 머리는 뜨겁지 않고,
그의 가슴팍은 싸늘하지 않으며,
그의 뱃심은 두둑하지도 않으며,
그의 두 다리는 휘청거리지도 않는다.
그는 감정에 치우쳐 판단이 흐리지 않으며,
이성만이 강한 냉혈인도 아니며,
멋을 풍긴다고 스타일리스트도 아니다.
그는 탐미주의자는 아니지만
탐미적인 면을 부인한다면 결코 그를 알 수 없다.
그는 이상주의자는 아니지만,
현실만이 전부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그에겐 쉽게 꼬집어 낼 강한 개성을 찾기는 어려우나,
남다른 그 무엇을 풍기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는 실패를 겁내는 겁쟁이가 아니며,
실패의 가치를 과소 또는 과대평가하지도 않는다.
그는 성공의 척도를 명성이나 황금에 두지 않지만,
지위나 황금을 무조건 경멸하지도 않는다.
그는 수단과 목적을 능률과 성과를 혼동할 만큼
우둔하지도 약삭빠르지도 않다.
그는 철학이 고상하다는 이유로 삼류 철학가를 존경해야 한다고 여기지 않으며,
유행가가 속되다 하며 일류 유행가 가수를 무조건 홀대하지도 않는다.
그는 전통을 과대 또는 과소 평가하지 않으며,
바쁜 것이 곧 성실한 것으로 착각하지도 않는다.
그는 다수의 의견에 잘 따르진 않으나,
소수 의견을 언제나 정당하다고 보지도 않는다.
그는 시대를 한탄하며 동풍에 말꼬리 치듯 살지 않으며,
그렇다고 어떤 이념이나 사상을 위해 물불을 안 가리는 혁명가도 아니다.
그는 소신을 굽히지 않으나,
고집과 소신이 동일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그는 햄릿도 아니며,
동키호테도 아니다.
그는 신앙과 예술을 과학으로 조명하지 않으며,
대가를 기대하고 베풀지 않는다.
그는 또 자기 부인의 정숙을 돋보이려,
남의 아내를 매도하지 않으며,
남의 손에 놓인 떡을 무조건 크고 맛있게 보지도 않는다.
그는 정복할 수 없는 존재가 아니나,
그렇다고 쉽게 설득당하지도 않는다.
그는 산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바다를 싫어하진 않는다.
그는 인생이 짧다 하여 성급한 단거리 선수가 되지 않으며,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좋아하는 일을 저버리지도 않는다.
그는 사교적은 아니지만, 친구가 없는 사람은 아니다.
그는 친구의 성공을 고통스러워하지 않으며,
그렇다고 긴장감없이 담담할 수 만도 없다.
그는 야망을 위해 생활을 희생시키지 않으며,
일상의 잔재미를 소흘히 여기지도 않는다.
그는 재사도 둔재도 아니며,
무엇이든 하면 된다고 믿는 몽매한도 아니다.
그는 자신의 잘잘못에 대한 타인의 견해에 과민하지도 초연하지도 않으며,
자신을 잘났다고도 못났다고도 생각지 않는다.
따라서 그의 우리 중의 누구와도
다른 사람이나 누구와도 같아 보여서,
시력나쁜 사람에겐 제대로 안 보이는 사람이다.
누구와도 같으나 누구와도 다른 감성.
<우리를 영원케 하는 것은>- 유안진